‘유럽 여행은 대도시’라는 고정관념, 이제는 벗어날 때다.
유럽 여행이 점점 일상화되며, 파리, 로마, 바르셀로나 등 대중적인 여행지를 넘어 ‘진짜 유럽을 느낄 수 있는 곳’을 찾는 여행자들이 늘고 있다. 특히 햇살 가득한 남유럽에서는 화려한 도시보다 현지의 숨결이 살아 있는 소도시들이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관광객이 몰려드는 인기 도시와 달리, 남유럽의 숨은 명소들은 한적하고 고즈넉한 풍경 속에서 여유로운 감성과 깊은 역사를 동시에 느낄 수 있다. 이탈리아, 스페인, 포르투갈, 그리스 4개국의 현지인들이 추천하는 작지만 깊은 매력의 도시들을 소개한다.
이탈리아 치비타 디 바뇨레조
“죽어가는 도시”에서 피어나는 낭만의 풍경
이탈리아 중부 라치오주에 위치한 치비타 디 바뇨레조(Civita di Bagnoregio)는 '죽어가는 도시'라는 별명으로 알려진 고대 마을이다. 깊은 계곡 위 외딴 바위 지대에 세워진 이 도시는 현재 단 하나의 인도용 다리로만 접근이 가능하다.
자동차 진입이 불가능한 이곳에서는, 현대의 소음과 분주함을 벗어나 중세 시대의 고요한 일상을 체험할 수 있다. 좁은 돌길과 붉은 벽돌 건물, 한 폭의 그림 같은 석양이 어우러져 여행자들에게 깊은 감동을 남긴다.
관광객 수 제한을 위해 소정의 입장료가 부과되며, 근처 도시 오르비에토와 함께 방문하면 보다 풍성한 여행이 가능하다.
스페인 론다
협곡 위의 도시, 전통과 자연이 어우러지다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의 론다(Ronda)는 스페인에서도 손꼽히는 절경 도시다. 깊은 협곡을 가로지르는 푸엔테 누에보(Puente Nuevo, 새로운 다리)는 이 도시의 상징으로, 양쪽 도시를 잇는 그 다리 위에서는 장엄한 협곡과 전통 마을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론다는 스페인 투우의 발상지로도 유명하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투우장 중 하나가 이곳에 자리하고 있으며, 투우에 대한 역사와 문화를 엿볼 수 있는 박물관도 마련돼 있다.
스페인 전통의 ‘푸에블로 블랑코(하얀 마을)’ 건축 양식을 유지하고 있어 사진 애호가들에게도 인기 높은 여행지다. 말라가, 세비야에서 당일치기 이동이 가능하다.
포르투갈 오비도스
왕비의 마을, 책과 꽃으로 피어나다
리스본 북부에 위치한 오비도스(Óbidos)는 과거 포르투갈 왕이 왕비에게 선물한 도시로, '로맨틱한 성곽 마을'이라는 별칭을 지닌다. 고성 안에 펼쳐진 이 작은 마을은 꽃으로 장식된 흰 벽의 집들과 타일로 꾸며진 거리, 그리고 문학적 분위기로 여행객의 감성을 자극한다.
이곳은 매년 국제 문학 페스티벌이 열리는 ‘책의 도시’이기도 하며, 골목골목에는 서점과 예술 갤러리, 고풍스러운 카페가 즐비하다. 대표 특산물은 체리 리큐어 ‘진자냐(Ginja)’로, 초콜릿 컵에 담아 마시는 체험은 오비두스의 대표 관광 포인트다.
성곽 위를 따라 걷는 산책은 도심에서 느낄 수 없는 정취를 선사한다. 리스본에서 버스로 약 1시간 거리로, 당일치기 여행도 무리가 없다.
그리스 모넴바시아
바다 위 요새 도시, 고요한 그리스의 얼굴
펠로폰네소스 반도의 동쪽 끝, 바다 위 거대한 바위섬에 자리 잡은 모넴바시아(Monemvasia)는 그리스의 마지막 숨겨진 보석으로 불린다. 좁고 긴 다리 하나로만 연결된 이곳은 바위 뒤편에 비밀스럽게 숨어 있는 중세 도시로, 첫 입장 순간부터 감탄을 자아낸다.
붉은 지붕과 돌담으로 이루어진 건축물들은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한 고요함을 전하며, 대부분의 숙소는 중세 요새를 개조한 부티크 호텔로 특별한 경험을 제공한다. 관광객이 많지 않아 조용한 신혼여행지로도 인기가 높다.
아테네에서 자동차로 약 4시간 거리로, 대중교통보다는 렌터카 여행에 적합하다. 그리스 전통 요리와 에게해의 푸른 바다를 함께 즐기고 싶다면 최고의 선택지가 된다.
감성보다 깊이 있는 여행을 꿈꾼다면
현지인들은 말한다. “유럽을 안다고 말하기 전, 그곳의 작은 도시들을 거닐어 봤는가?”라고.
남유럽의 숨은 명소들은 유명 관광지에서는 결코 느낄 수 없는 고요한 여유, 정제된 아름다움, 그리고 현지의 삶을 선사한다. 감성과 힐링, 역사와 자연이 조화를 이루는 이들 소도시는 바쁜 여행 일정을 잠시 멈추고, 여행자의 마음을 깊게 만드는 특별한 시간으로 이어질 것이다.
지금, 지중해 바람을 따라 조금만 옆길로 들어서 보자. 당신의 유럽은 그곳에서 새로 시작될 것이다.